[또봇] 정월 대보름

Tobot/대도시는 오늘도 문제없음!2025. 2. 1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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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 부럼 사 왔어?"

"응~ 땅콩이랑 호두. 그리고 아몬드!"

"아몬드?"

"이것도 딱딱한 견과류니까!"

 

킥킥 웃은 리모가 "그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도운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사실 애들껀 아니고 우리 간식용. 가게 갔는데 할인 매대에 진열해 놨더라고."

 

그러면서 쑥 꺼내는 노란색 봉투. 허니버터 아몬드라고 적힌 익숙한 간식이었다.

도운은 픽 웃으며 건네주는 봉투를 받았다.

 

"대용량이네. 전에 찾을 땐 없더니."

"그러게나 말이야. 맨날 찾을 때는 없지. 그래도 이번엔 타이밍 좋았지?"

 

어깨를 으쓱거린 리모는 장난스레 눈을 접었다.

 

"그래. 마침 간식도 다 떨어졌는데."

"내 말이. 뭐, 그 외에 오랜만에 곶감이랑... 자네가 말했던 오곡밥용 잡곡."

"시장 안 김 가게 옆. 거기 맞지?"

"응. 거기. 아예 섞어서 파니까 좋더라. 딱 하루 먹을 만큼만 살 수도 있고."

"편리하지. 우리야 미리 준비했다지만 나물도 반찬 가게에서 다 팔고."

"바쁠 때는 죄다 사서 준비해도 될 정도야."

 

리모는 나물을 불리기 위해 아침부터 도운을 도와 마른 고사리며 취나물 등을 물에 담가 놓은 걸 떠올렸다. 

 

"씁... 오늘 밤에 정월 음식 먹고 나면 내일은 흰 밥 지어서 남은 나물로 비빔밥 해 먹으면 딱 좋겠어."

"응. 저번에 볶음 고추장 해 놓은 거 있으니 거기에 비벼 먹자고."

"크, 벌써 기대가 되네."

 

벌써 입맛이 돈다는 듯 쩝, 하고 입을 다시는 리모를 보며 도운이 크게 웃었다.

 

"그러게, 나도 기대가 되네. 양푼에다가 싹 넣고 비벼 먹자고."

 

 

 

*

"으, 잡곡밥 싫은데..."

"정월 대보름 오곡밥은 액운을 쫓기 위해 먹는 거래."

"액운이 뭔데?"

"사나운 기운? 나쁜 일 당하는 거 말 하나 봐."

"나는 그런 거 안 당하는데."

"그냥 먹어."

"그렇게 말하는 하나 너도 잡곡밥 별로잖아."

"그건, 그렇지만...."

 

핸드폰을 보면서 정월 대보름을 검색하던 하나가 한숨을 쉬었다. 

 

"아빠가 아침부터 준비해서 차려주신 거잖아."

 

그러자 두리가 입을 삐쭉 내밀고 툴툴거리면서도 얌전히 젓가락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도운과 리모가 서로를 마주 봤다. 그래도 애들이 착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뜻에 둘은 쿡쿡 웃었다.

 

"하나 말대로 정월 오곡밥은 일 년 동안 나쁜 일 생기지 말라고 먹는 거고 여기 나물들은 여름에 더위 먹지 말라고 먹는 거니까 많이 먹어라. 불고기랑 제육볶음만 먹지 말고."

"네에..."

"네. 맛있게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래, 골고루 먹어. 나물들도 다 맛이 다르니까 하나씩 먹어보고."

 

리모의 말에도 조금 머뭇거리는 하나 두리와는 달리, 선뜻 나물을 집어 하나씩 맛본 세모가 눈을 깜빡였다.

 

"어? 진짜 맛이 다 다르네요."

"그치? 의외로 맛있어. 이건 짭짤하고 이건 고소하고."

"응. 맛있어요."

 

입맛에 맞았는지, 아니면 신기해서 그런지 세모가 연신 나물들을 집어 먹자 그걸 본 하나와 두리가 나물을 먹어보기 시작했다.

 

"오... 진짜 괜찮은데?"

"응. 이거 고소해서 맛있어요."

"그렇다니까. 여기 상추랑 깻잎, 고기랑도 같이 먹어보고."

"네~"

 

세모가 시작을 잘 터줘서 다행이다. 평소엔 잘 먹어보지 못했을 나물을 낯설게 여길까 걱정했는데 한숨 돌렸다. 

도운과 리모는 점점 속도를 더해가는 아이들의 젓가락질을 흐뭇하게 보며 짭짤하게 간이 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역시 고기랑 쌈 채소를 함께 준비하기로 한 건 잘했다고 생각하며. 

 

 

 

*

"아빠! 여기 호두 망치요."

"그래, 고맙다. 아까 가져온다는 걸 깜빡했네."

"말하신 곳에 그대로 있더라구요."

 

금방 찾았어요! 하나가 방긋 웃으며 호두 까기용 망치 두 개를 건넸다.

 

"하나 너도 어서 앉아!"

"네~"

 

하나는 세모가 툭툭 치는 옆자리로 가서 앉으며 탁자에 있는 땅콩을 집었다.

이빨로 살짝 깨물자 빠삭 소리와 함께 두꺼운 껍질이 깨지고 작은 땅콩 두 개가 손바닥 위로 데굴 굴러왔다.

 

"으. 껍질 너무 세게 깨물었나 봐. 아빠, 맛이 이상해요."

"껍질이 입안에 닿아서 그래. 이빨로 살살 깨물어."

 

먼저 땅콩을 까먹던 두리가 혀를 내밀고 으으, 하며 진저리를 쳤다.

그 모습을 보며 하나와 세모가 킥킥 웃자 두리가 콧등을 찌푸렸다.

 

"니네도 곧 느끼게 될 거다."

"우린 살살 깨물 건데?"

"살살 깨물어도 느껴질걸!"

"그건 그래. 이빨만 닿았는데 껍질 깨지면서 가루가 닿나 봐."

 

놀리는 세모와는 달리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하나에 맥 빠진다는 표정을 지은 두리가 곧 표정을 풀었다.

 

"그래도 땅콩은 고소하다. 깨 먹는 재미도 있고."

"맞아. 부서질 때 재미있어."

 

하나 두리와 다르게 손가락으로 가볍게 껍질을 부순 세모가 씁, 하고 미간을 찌푸린 하나에게 땅콩을 건네줬다.

 

"고마워."

"뭘. 여기, 아빠도 드세요."

 

이어서 리모에게도 깐 땅콩을 건넨 세모가 '우리 아들...!' 하고 감동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빠를 머쓱하다는 듯 바라봤다.

별것도 아닌데. 매번 작은 일에도 크게 반응해 주는 아빠가 좋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좋은 게 더 크긴 하지만.

 

"호두 먹을 사람?"

 

그때 주방에서 돌아온 도운이 들고 있던 호두 망치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망치라고 말하긴 했지만 호두를 깨기 쉽게 가운데 홈이 있는 도구는 펜치를 더 닮아 있었다.

그런데 왜 망치지? 의문에 고개를 갸웃였지만 곧 저요! 하고 손을 드는 두리에 세모는 저도요. 하고 말했다.

파삭. 땅콩 껍질 깔 때와는 소리의 크기가 달랐다. 도운은 깨진 호두를 먼저 손을 든 두리에게 쥐여주고 다음 호두를 들었다.

 

"우리 세모 호두는 아빠가 깨 줄게."

 

도운이 들고 있던 호두 망치 중 하나를 어느새 건네받은 리모가 얼른 호두를 깼다. 

 

"잘 먹을게요."

"그래, 우리가 호두 깨서 탁자에 올려놓을 테니까 가져가서 먹어."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씩 웃으며 호두들을 가리켰다. 걱정하지 말고 맘껏 먹으라는 듯. 그러나 순순히 대답하는 하나와는 달리 두리가 손을 내밀었다.

 

"어, 저도 호두 까보고 싶은데!"

"딱딱해서 힘들어. 그래도 하나만 깨 볼래?"

"네!"

 

도운은 어쩐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깨진 호두는 하나에게, 망치는 두리에게 건넨 도운이 너무 힘줘서 팍 깨지 말고 살살 깨야 해. 하고 말했다. 

 

"어, 힘줘야 깨지잖아요."

"너무 팍 힘주면 깨지면서 튕길 수가 있으니까."

"아아~ 네!"

"그래. 안 막힌 곳을 아래쪽으로 해서."

 

세모는 신중한 표정으로 힘을 주는 두리와 두리를 지켜보는 도운과 리모를 바라보며 탁자 위에 호두를 가져와 까득 깨트렸다.

두둑 소리를 내며 가볍게 깨지는 호두를 놀란 토끼 눈으로 보는 하나에게 넘겨주며 세모는 조용히 물었다.

 

"근데 너희 집도 정월 대보름 음식 처음 먹어?"

"응. 땅콩이랑 호두는 작년에도 까서 먹었는데 정월 음식은 처음 먹어봐."

 

역시 땅콩보단 호두가 좀 더 맛있었는지 깨진 껍질 안에 호두를 쏙쏙 골라 먹은 하나가 봉투에 껍질을 쏙 넣고 말했다.

 

"나물도 거의 다 처음 먹어보고 소금 넣은 잡곡밥도 처음이야. 너도 그래?"

"응. 나도."

"그렇구나. 우리 다 같이 처음 먹어봤네!"

 

어느새 호두를 깼는지 오! 깨졌다! 하며 기뻐하는 두리를 보고 웃는 하나에게 세모는 호두를 하나 더 깨줬다.

 

"그러게, 같이 처음 먹어보네."

"올해 했으니까, 내년에도 또 먹겠지? 매일 이렇게 먹는 건 좀 그런데 일 년에 한 번이라고 생각하니까 좀 좋은 거 같아."

"맞아. 좋은 거 같아."

 

내년에도, 그다음에도 매년 당연히 있을 이벤트가 되는 거니까. 

세모는 하나의 '좋은 거 같아.' 라는 말에 동의하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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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주제: 가족

 

레봇 전력이 다시 시작한 기념으로 오랜만에 끄적끄적. 

쓰다가 문득 제가 생각보다 먹는 이야기를 많이 쓴다는 걸 깨달았고... 역시 한국인은 어쩔수 없나.

시점은 대략... 변두리로 이사간 해의 정월 대보름? 입니다.

주제가 너무 노골적이지 않고 응근하게 보였으면 했지만...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