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 몹시 미안하단 듯, 배달원은 처음 보는 어색하고 몸 둘 바 모르는 표정이었다.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미오의 비명과도 같은 ‘거짓말이야!’ 라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래, 거짓말이야.
나도 모르게 수긍한 순간, 배달원은 말했다.
돌아오려고 준비하던 중, 제국군에 습격당해 팀 모두가 사망했다고.
그러며 아는 사람이 너희밖에 없는 듯해 함께 가져왔다며 내미는 속목 보호대 하나. 헤진 천에 누나라는 글자가 시렸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제국이 무너졌다.
많은 것이 변했다.
언제나 건강할 것 같던 할머니는 마지막 전투에서 문명종결수를 각성시키려던 전복과 함께 자폭을 시도, 라디오자키가 폭발 직전 실행시킨 실드로 간신히 구할 수 있었지만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혼수상태였다.
그 이후 근엄하지만 조금 푼수 같던 좀무왕은 칼같이 냉철해졌고 영웅 이순희의 이름 아래 좀무국은 좀무제국이 되었다.
끝까지 발목을 잡던 환장 용병단의 마지막 생존자 관장은 죽기 전 마음을 돌려 기밀문서를 전송해 그 이름을 기록에 남겼고 악에 받쳐 우리를 저주하던 무녀 흉은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자살했다.
우리 또한 변했다.
피오는 불가사리 장인 화심과의 전투 중 가슴에 찍힌 인장이 화상으로 남았다. 달궈진 지팡이 끝이 피오의 심장을 태울 듯 내려찍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화심을 제 손으로 처치하고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피오는 지구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우리 앞에서 어른의 얼굴로 괜찮아, 하며 웃었다.
지오는 로키의 심각한 손상으로 시삽을 교체 받은 이후 표출하던 감정을 안으로 삭이게 됐다. 이게 잘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속삭이는 미오의 표정은 전에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천진하게 웃던 표정이 사라진 얼굴은 낯설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그리고 태오형은, 태오형은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됐다.
죽을 뻔한 나를 구하다가.
‘널 살릴 수 있었으니 나는 후회하지 않아.’
태오형은 웃었고 나는 울었다.
우리는 길지 않은 의논 끝에 클론과 시삽을 반납했다.
시삽과 헤어지는 건 아쉬웠지만 우리는 복수를 끝냈고, 지쳤고, 지구로 돌아가길 원했다.
지오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로키의 손상이 순조롭게 복구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후 미련 없이 동의했다.
남은 걱정이던 할머니의 상태는 리자의 예외적인 승인 아래 배달원이 전달해주기로 했다.
시간이 흘렀다.
일상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도 손쉽게 녹아들었다.
형은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고 미오는 수능 준비로 분주하다. 지오는 공부보단 기술을 외치며 온갖 체험마당을 돌아다니고 있고 피오는 지구의 기술을 향상시키겠단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리고 삼 년, 배달원은 언제나처럼 예고 없이 나타나 한 통의 봉투를 전하고 사라졌다.
봉투 안에는 여러 장의 편지들과 할머니의 웃는 얼굴이 찍힌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다행이야, 태오형이 웃었고 잘 지내나보네, 지오가 사진 속 할머니 옆에서 둥둥 떠 있는 로키를 보며 불퉁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피오는 지오의 뒤에서 함께 사진을 보다 누나가 오면 보여줘야겠다 말하며 지오의 손에 들린 더 이상 보지 못할 그리운 이들의 사진과 편지들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