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한] 꽃과 웃음
Tobot/대도시는 오늘도 문제없음!2016. 3. 6. 16:46[셈한] 꽃과 웃음
서러운 맘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하나는 넘어져 엎어진 채 한 손에는 '대도 유치원 햇님반 차하나' 라고 적힌 잔뜩 구겨진 튤립 모양 명찰을, 또 다른 손에는 바닥에 쓸려 지저분하게 변한 노란 후리지아 꽃다발을 꼭 쥐고 몇 번이고 입술을 짓씹었다.
울지 않는 씩씩한 어린이가 되겠다고 엄마랑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는데.
처음 넘어졌을 땐 참았는데, 다시 넘어진 지금은 너무 아파서.
하나는 결국 입술을 허물어트리며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앞으론 넘어져 울며 엄마를 찾는 두리를 꼴불견이라고(사전에서 봤다) 놀리지 않을 거야.
마음속으로 작게 다짐하며 엉망으로 까지고 상처 난 작은 손바닥과 반바지 아래 맨 무릎에서 욱신거리며 올라오는 아픔에 퐁퐁 솟아오르는 눈물을 떨어트렸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햇빛은 쨍쨍, 평소라면 맛있는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낮잠을 자고 있을 시간인데, 지금은.
역시 나비를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안고 있던 후리지아를 닮은 노란 나비에 눈이 팔려 ‘선생님과 할 말이 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라고 했던 엄마말을 듣는 거였는데.
엄마 말을 어긴 하나가 잘못했다. 잘못했으니까. 엄마가 얼른 와줬으면, 같이 나비를 따라가다가 넘어진 하나를 모른 채 달려가 버린 두리가 하나를 찾아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
간절하게 빌며 줄줄 떨어지는 울음을 멈추려 입술을 앙다문 하나가 넘어진 몸을 애써 일으켜 앉았다.
혼자는 너무 무서웠다.
땅을 짚고 일어날 때 모래가 박히며 아픔을 토해내듯 기어코 피가 비치는 손바닥 보다, 두 번이나 쓸려 길게 상처 나 방울방울 피가 맺힌 무릎보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이 나무만 가득한 낯선 길이, 무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엄마가, 엄마가 하나를 반드시 찾아줄 테니까.
하나는 잔뜩 울어 붉게 달아올라 따끔거리는 눈가를 비볐다.
길을 잃었을 땐 가만히 있으라고, 길을 헤매다 더 멀리 가면, 나쁜 아저씨가 하나를 잡아가면 더 큰 일이 난다고 선생님이 그랬으니까.
선생님의 말을 일찍 생각해내지 못하고 괜히 두리가 달려간 곳을 쫓아가다 엄마와 더 멀어지고 넘어졌다.
하나는 오도카니 웅크려 멍하니 앉아 내리쬐는 햇볕에 머리와 등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불안감에 긴장되어있음에도 어린 몸은 정직하게 반응하는 걸까,
실컷 뛰고 울어 지쳐버린 듯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눈에 힘을 잔뜩 줘 하나가 졸음을 몰아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하나는 문득 하나의 위로 드리워진 긴 그림자를 발견하고 눈에 힘을 풀고 크게 떴다.
“엄마!?”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
지쳤던 만큼 반가운 마음에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리자 하나의 눈 가득 햇빛이 부서져 번졌다.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빛에 적응되지 않은 눈을 깜빡이며 비빈 하나가 앞에 비치는 실루엣이 아주 작음을 느끼고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두리야…?”
그러자 좀체 반응이 없던 실루엣이 흠칫거림을 느끼며 잔뜩 찡등그리며 제대로 앞을 인지했을 때.
앞에 비친 건 하나의 반응에 놀랐는지 주춤 물러서는 두리 또래의 낯선 남자애.
엄마도, 두리도 아니었다.
하나는 그것을 인식하자마자 순식간에 울컥 솟아오르는 서러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참을 수가 없어서, 소리 내어 토해냈다.
왜 엄마가 아닌 거야! 왜 두리가 아닌 거야! 엄마도 두리도 밉다! 집에 있을 아빠도 미워! 왜 난 혼잔 거야! 혼자는 너무너무 무서웠다. 왜 찾아주지 않는 거야! 하나가 혼자 있단말야!!
폭발해버린 듯 마치 오열 같은 울음이 한참이나 터졌다.
넘어졌을 때보다 훨씬 아파서 울음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제어되지 않는 눈물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울고 있던 하나는 문득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는 손을 느꼈다.
그건 잊어버리고 있었던, 이미 가버린 줄 알았던 아까의 남자애.
하나와 눈을 맞춘 남자아이는 작지만 맑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속삭였다.
"울지 마. 뚝. 왜 혼자 있어? 여기서 넘어진 거야?"
하나는 그 어색하지만 상냥한 목소리와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온기에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내 더듬더듬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 왜 주저앉아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울음 섞인 그 말들은 알아듣기 매우 어려웠지만, 남자아이는 하나의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마주치고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몹시도 상냥한 아이였다.
그렇게 한참을 횡설수설.
하나가 울먹임과 함께 이야기를 멈춘 건 하나가 두 번이나 넘어져 얼마나 아팠는지를 말 한 후로, 제 아픔과 서러움을 모두 쏟아낸 후였다
격양된 감정을 마침내 진정시킨 듯 한숨 돌린 하나가 몹시 부끄러워하며 마주치던 눈을 꼭 감고 고개를 푹 숙인 것도 그 후.
그 모습에 하나를 달래던 남자아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름이 뭐야?"
약간의 웃음기가 담긴 순수한 물음.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어느샌가 명찰과 비워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던 하나가 두리처럼 놀리지 않는 남자아이에 몰래 눈치를 보다 용기 내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하나, 대도 유치원 햇님반 차하나. 너는 누구야?"
왠지 쑥스러운 기분에 하나가 눈가를 손등으로 비비며 이름을 묻자 웃고 있던 남자아이가 하나의 손을 잡아 내려주며 뒤편을 쭉 가르치며
"나는 세모. 저기 뒤에서 사는..."
라고 말했을 때였다.
"하나야!!!!"
"어, 엄마...!!!"
아침만 해도 단정했던 단발이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얼굴은 울 듯 일그러져 있는 하나의 엄마였다.
겨우 울음을 멈추고 진정했던 하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뭔갈 생각할 틈도 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안심의 눈물이었다.
하나의 엄마도 하나가 우는 것을 보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모자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하나는 아빠가 여자를 울리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엄마도 울리면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엄마가 저 때문에 운다는 사실에 또 울었다.
이게 다 차두리 때문이다. 두리가 하나를 두고 가지 않았더라면 하나는 엄마를 울리지 않았을 텐데. 아니, 사실 하나 탓이었다. 내 탓이야. 나 때문에… 엄마가,
한참을 하나와 함께 울던 하나의 엄마가 진정했는지 제 목을 끌어안고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못한 하나를 토닥이며 빨개진 눈으로 옆에 서 당황스러운 얼굴로 뻘쭘히 바라보는 세모를 보며 눈을 휘었다.
"하나랑 같이 있어 줬나 보구나. 고마워... 아줌마가 하나를 잃어버린 줄 알아서, 많이 걱정하고 있었거든. 정말 고맙다."
"아, 아니에요. 아줌마..."
정말로 안심했다는 듯 웃으며 다정하게 웃는 얼굴.
"그래, 이름이 어떻게 되니? 너도 엄마를 잃어버린 거니?"
세모는 그 얼굴에 순간 턱 막힌 말문을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 전 세모라고 해요. 전 잠깐 나온 거라서 좀 있다 저기 버스 있는데 가면 돼요."
"그렇구나. 다행이다. 아줌마가 데려다줄까?"
"아니에요. 좀 더 놀다가 갈 거에요."
마르는 입술을 축이고 씩 웃자 다정한 얼굴이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고 하나를 달랬다.
"그래, 조심해 가렴. 저쪽에 하나 동생이 있어서 아줌마가 가봐야 하거든. 다음에 보면 꼭 맛있는 거 사줄게. 하나야, 이제 친구한테 인사해야지."
"엄마 찾아서 다행이다. 잘 가 하나야."
"응, 안녕 세모야..."
그러자 엄마에게 안겨있던 하나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히끅거리며 퍼득거리며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드는 세모를 따라 조막만 한 손을 흔들었다.
엄마가 와서 잊어버렸다. 화나진 않았겠지? 얼굴을 보니 괜찮은 거 같았다. 다행이야… 아까 저기 뒤에 산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또 볼 수 있겠지? 다시 만나면 꼭 친구 하자고 해야지.
잔울음과 함께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삼키며 말갛게 웃은 하나가 엄마가 바닥에서 주어 털어 준 명찰을 쥐고 꽃다발을 안은 채 안아주겠다는 엄마에게 하나 많이 무거워져서 엄마가 힘들거라고 고개를 흔들고는 걱정스레 하나의 무릎과 다리를 보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그리고 그 다정한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세모가 어쩐지 꽉 막힌 듯 답답해져 오는 가슴을 쓰다듬었을 때쯤, 울음이 아닌 웃음을 걸고 제 엄마에게 신나게 말을 하던 하나가 홱 돌더니 제게 뛰어오는 모습을 당황스럽게 바라봤다.
하나는 돌에 걸려 휘청이긴 했지만(엄마와 세모가 동시에 몸을 움찔거렸다) 용케 균형을 잡고 세모 근처로 다시 뛰어왔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린데도 한참 운 후라 체력이 떨어져 찬 숨을 내쉰 하나는 얼른 제 손에 쥐어진 후리지아 중 제일 멀쩡해 보이는 꽃을 빼냈다. 그나마도 멀쩡하지 않아 잠시 울상을 지었지만.
"이거!!"
"이게 뭐?"
하나가 내민 후리지아를 얼결에 받은 세모가 갸웃거리자 하나가 잠시 머뭇거리다 결심한 듯 까진 손이 쓰리지도 않은지 세모의 손을 꼭 잡으며 외쳤다.
"고마운 사람에겐 꽃을 주는 거라고 선생님이 그랬어. 오늘 내 앞에 와줘서 고마워! 세모가 있어줘서 다행이야. 그리고…. 그리고 다음에 보면, 꼭 친구가 되어줘!"
"...."
그리곤 다음에 만나면 말하려고 했는데 다음에 말하면 부끄러울 거 같았다며 말갛게 웃는 하나의 말에 눈을 깜빡이며 굳었던 세모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응..."
하고 간신히 대답했다.
"고마워!!"
그러자 꽃보다 환하게 활짝 핀 얼굴로 웃으며 쥔 손을 신나게 흔들고 답한 하나가 뒤돌아 제 엄마에게 뛰어갔다. 그래, 동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었다.
엄마를 만나 손을 잡은 하나가 뒤돌아 저에게 손을 붕붕 흔드는 것에 손을 마주 흔들어주며 방금 제가 겪은 상황을 찬찬히 정리하던 세모가 이내 푹 자리에 주저앉아 하나가 준 꽃을 꽉 쥔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마법처럼 쓸쓸하고 답답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와줘서 고마워, 있어줘서 다행이야. 친구가 되어줘' 하나는 이미 엄마와 함께 동생이 있다는 곳으로 갔는데. 세모의 귀엔 하나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보육원을 관리하는 재단의 사정으로 보육원에 위치가 바뀐다며, 복잡한 말을 하는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말에 몇 없는 짐을 정리하던 세모가 큰 짐부터 정리한다며 들어온 아저씨들과 트럭들을 피해 나왔던 것뿐인데.
햇빛에 밝게 빛나던 머리카락에 호기심이 생겨 다가갔다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닫고 보육원 동생들에게 그랬듯 아이를 달랜 것 뿐 이었는데.
보육원이 바뀐다고 했으니 다시 만나 친구가 되긴 힘들겠지만, 머뭇거리던 맘을 용기 내 달래주길 잘했다고.
세모는 상처 나고 흙이 묻었음에도 지금까지 봐 왔던 어떤 꽃보다 예쁜 후리지아에서 가득하게 퍼지는 온기와 향기로 마음을 화사하게 채워냈다.
이후 세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후리지아가 되었습니다.
3.1에 올리고 싶었는데 진도가 진짜... 진짜로 안나가서..
이렇게 힘들게 글써본것도 오랜만이다 싶네요. 으으... 괴로웠다...
처음에 쓸 땐 즐겁게 썼는데 한 열번쯤 뒤집어 엎고 퇴고하고를 반복하니 아...
어쨌든 셈한의 처음을 쓰고 싶어서.
+하루종일 울었던 하나는 하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린 두리와 부둥켜 안고 또 울고 연락받고 데리러 온 아빠에게 혼나며 다시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