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한]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Tobot/조금 다른 이야기2017. 9. 11. 17:49셈한 아이스크림 합작
“엄마, 유치원에서 이상한 꿈 꿨어.”
“무슨 꿈?”
‘나쁜 꿈은 아니었죠?’
그 말에 네, 하고 대답하자 그럼 됐다며 서둘러 칭얼거리던 친구를 챙기러 가던 선생님과 다르게
엄마는 하나의 꿈을 들으며 어머, 하고 웃었다.
“신기한 꿈을 꿨네.”
[셈한]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눈을 떴을 때, 하나는 달빛 비치는 어두운 숲속에 혼자 있었다.
“어…? 방금 전 까진 유치원이었는데…?”
여긴 어디지? 낮잠 시간이라고 이불을 덮어주던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던 하나는 문득 쏴아-하고 나뭇잎을 스치고 불어와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에 고개를 돌렸다.
주변은 평범한 숲으로 보였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모형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벌레 먹히거나 마른 것 하나 없이 반듯한 잎들부터 파르스름 빛나는 흰 흙으로 가지런히 정돈된 오솔길, 삐비빗- 찌르륵-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는데 그림자도 볼 수 없는 새와 벌레에, 밤인데도 햇빛이라도 비추듯 따듯하고 포근한 온도까지.
“이상하네...”
무엇 하나 평범한 게 없음에도 평범하다고 느껴지고, 무서울 법 한데 전혀 무섭지 않아서 더 이상한 곳이었다.
하나는 오도카니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또 한참을 고민하다 일단 걷기로 했다.
길을 잃으면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지만, 이곳은 선생님은 올 수 없는 곳인걸. 올 수 없는 곳이란 생각이 드는걸.
하나는 달빛에 의지해 끝이 보이지 않던 숲 너머, 향기 없는 장미 언덕에 도착했다.
언제 숲이 있었냐는 듯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흰 장미뿐인 언덕은 한눈에 봐도 경사가 높았는데 이상한 건 숨이 차지도, 다리가 아프지도 않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미 이상한 일이 하나 두 개가 아닌걸.
그러니 이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정말 이상한 건 언덕을 넘었을 때 나타났다.
길을 막고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낡은 아치형 나무문.
하나는 보드라울 것이 분명했지만 절대 만지면 안 되는 장미의 언덕 끝에서 그 이질적인 문을 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
“와, 너무 예뻐...”
아치형 문의 가장자리를 휘감은 붉은 장미는 충격적일 정도로 선명한 색으로, 한 송이 한 송이 커다랗게 피어올라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하나는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어쩜 이렇게 예쁘지.
저도 모르게 문 앞으로 다가가 한참이나 장미를 바라보던 하나는 문득 손을 옴찔거렸다.
이제 저 문 너머로 가야 하는데. 만져도 되는 걸까? 장미를 만지면 큰일이 나는걸. 더군다나 이 장미는...
가장자리를 타고 손잡이에 커다랗게 핀 장미를 보며 한참을 머뭇거리던 하나는 이내 결심한 듯 소곤, 누구에게 묻는지 알지도 못하고 속삭였다.
“저기, 가도 될까?”
그러자 마치 하나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혹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숲속에서 불었던 바람이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장미들 사이로 불어와 하나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망설이는 하나의 등을 밀어주는 것처럼.
그것이 허락이란 걸 하나는 알았다. 뒤를 돌아보자 걷는 내내 조용했던 장미들이 손을 흔들듯 바람을 타고 흔들거렸고 하나는 방긋 웃었다.
곧 이었다. 닿게 되는 건.
*
문을 열자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저 문을 열었을 뿐인데, 밤이 낮으로 바뀌다니.
하나는 부신 눈을 가리고 눈을 깜빡였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손님이 왔네.]
놀라 번쩍 고개를 든 하나의 눈이 점점 선명해지는 한 사람을 잡아냈다.
멋들어진 모양에 검은 비단 모자, 은색 체인이 걸린 외눈 안경과 짙은 정장, 반듯하게 맨 타이에 흰 장갑을 낀.
하나가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이리로 와. 여긴 어떻게 왔니?]
남자는 흰 티 테이블에 앉아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제 옆의 의자를 밀었다.
하나를 의자에 앉힌 남자는 눈을 떠보니 숲이었고 길을 따라오니 여기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틈으로 떨어졌구나. 하고 말했다.
“틈?”
[그래, 가끔 열리곤 해. 하지만 사람이 빠진 적은 몇 없었는데... 운이 좋았네.]
“운이요?”
[음... 오는 길에 장미가 있었어?]
“네. 엄청 많이 피어 있었어요. 흰 장미랑 엄청 예쁜 빨간 장미!”
[만지지 않았지?]
“네! 만지면 안 되는 장미잖아요.”
[만지지 않아야 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
“어... 그냥... 어? 왜 그렇게 생각했지?”
남자의 질문에 하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러나 남자가 빙긋 웃었다.
[도와줬구나.]
그리고 힐긋 맞은편을 바라보는 시선에 하나가 같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왜 눈치채지 못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랗고 하얀 토끼 인형이 앉아 있었다.
“와! 토끼다.”
[응, 내 티타임 친구지. 그나저나 네가 마실만 한 게 없는데...]
남자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틈에 대해선 이미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혹시 목이 마르니?]
“아뇨.“
한참 고민하던 남자는 제 물음에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하나를 보며 안심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남자의 손에 어느샌가 커다란 솜사탕 하나가 들려 있었다. 놀라운 광경에 하나가 와! 하고 놀라자 남자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혹시 솜사탕 좋아해?]
“네! 좋아해요!”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기뻐하는 하나에게 솜사탕을 건네주고 다행이구나. 하고 속삭인 남자는 완전히 긴장이 풀린 하나가 재잘재잘 그렇게 많은 장미는 처음 봤다거나, 오솔길에 흰색 흙이 있었는데 그것도 처음 본 거라 엄청 신기했다거나, 갑자기 햇빛이 비쳐서 엄청 놀랐다거나, 토끼가 정말 귀엽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흐뭇하게 듣다, 어느새 하나가 다 먹은 솜사탕의 막대를 들고 가물거리는 눈으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이런 하고 웃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구나.]
아쉽다는 듯 하나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은 남자가 이제 거의 잠에 든 하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다음에 또 보자. 안녕.]
**
다들 벌써 지루해진 모양이었다.
단상에 올라오면서 슬쩍 보니 다들 요령껏 딴청을 하고 있었다. 어깨가 축 처지거나 삐뚜름하게 앉아있거나, 딴에는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듯했지만 맨 앞에서 보니 너무 적나라해 민망할 정도였다.
특히 차두리. 두리야... 입학식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하나는 아빠 차에 놓여있는 흔들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두리를 보고 침음을 삼켰다.
가족이라서 유독 눈에 걸리는 거라고 믿고 싶다.
하나는 애써 생각을 지우며 또박또박 선서를 읊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께 인사하고 난 뒤, 돌아 마저 인사를 하려 고개를 숙였을 때였다.
하나는 순간, 눈이 마주쳤음을 느꼈다.
권세모.
하나는 어색해지는 마음에 서둘러 자리를 찾아 들어가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권세모, 예비 소집에 집안일 때문에 나오지 않았다는 권세모를 하나는 오늘에서야 처음 봤다.
그런데 세모는 하나를 보며 아주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하나야.”
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하나는 세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권세모는 아주 잘 생긴 얼굴을 하고 있어 한 번이라도 봤다면 잊었을 리가 없었다.
세모는 하나가 제 인사에 의아해하자 “기억 못 하나 보네.” 하고 웃었다.
어쩐지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이라 하나는 그것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입학식을 위해 강당으로 이동하느라 정신이 없어 잠시 잊고 있었는데...
하나는 왠지 세모를 생각하면 할수록 어딘가 낯이 익는 듯해 이게 그저 착각인지, 아니면 진짜 어디서 봤던 건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이상하네...”
그리고 아주 만약, 진짜로 어디선가 봤던 거라면,
그건 하나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전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나는 제 뒤에 앉아있는 권세모를 의식하며 다시 마른 입술을 핥았다.
입이 마른 데, 물이 아니라 단 게 먹고 싶었다. 아주 달고 손쉽게 녹는 것.
초콜릿도 사탕도 좋아하지 않는 차하나가 유일하게 찾는 아주 단.
***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눈을 떴더니 선생님이 있었어.”
하나는 엄마를 졸라 사 온 솜사탕을 뜯어 먹으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쉬웠겠네.”
“응. 꼭 인사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신기한 게 또 있었어! 있지...”
“으응?”
하나는 마치 비밀을 말해준다는 듯 두 손을 엄마의 귀에 모으고 작게 소근 거렸다. 하나는 그런 하나가 몹시 귀여웠지만 웃어버리면 안 될 거 같아 입을 꼭 모으고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꿈에서 본 토끼 인형이 유치원에 있는 토끼랑 똑같이 생겼어!”
굉장하지! 왜 그땐 몰랐는지 모르겠어! 하는 하나의 앞에서 소영은 기어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신난 얼굴로 웃는 하나를 껴안았다. 두리의 손을 잡고 들어오던 도운이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었냐고 물을 정도로, 즐거운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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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한 아이스크림 합작 참가글입니다.
대지각쟁이 레렛님은 합작마저 지각하고 마는데...ㅠ_^
앞부분 배경 설명에 너무 진을 뺀 느낌이라 아쉽네요.
의도는 길고긴 길을 넘어 세모와 닿는다는 것이었으나... fail....
https://95boonhong.wixsite.com/semhan31